[특별기고] 신 평 변호사
제목='대구의 추억'

일부 진보 쪽에 있다고 하는 인사들은
대구 사투리로 ‘꼬시다(고소하다)’는 듯
대구가 당연한 업보 받은 것으로 놀려대
너의 어린 시절이나
네 부모의 젊을 때 모습을 떠올리면
절대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괘씸한 놈!

신 평 변호사
신 평 변호사

지금 경주에 살면서, 서울 광화문에 차린 연구소에 왔다 갔다 한다. 역마살이 있어서 평생 이곳저곳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내 고향은 대구다. 아니 순수 대구토박이다. 부모 양계의 조상들이 임진왜란 무렵부터 대구에 사셨으니, 나만한 토박이가 거의 없다. 그래서 더위에 아주 강하다. 그리고 대구사람답게 고집이 세다. 대학 은사인 고 심헌섭 선생이 “저 놈 고집은 누가 꺾나?”하고 한탄하실 정도였다.

경북 도지사를 한, 돌아가신 큰 외숙이 해방당시 대구지역 젊은이의 90퍼센트가 좌익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많이 죽었다. 집단 학살하러 골짜기에 장정들을 끌고 가니 이를 두고 ‘골로 간다’고 했고, 이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완전히 일을 망친다’는 의미로 썼다. 큰 외숙 같이 살아남은 사람은 남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빨갱이를 미워하는 듯이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그러던 것이 박정희 정부 이래 대구경북지역 전체가 보수우익의 철옹성이 되어버렸다. 큰 외숙처럼 위장하며 살고 싶지도 않았고 거기에다 고집은 무척 세어, 고향 대구는 내게 언제나 불편한 곳이었다. 아마 내가 다른 지역 출신이었으면, 지금쯤 국회의원 몇 선 정도는 족히 하였으리라. 사회개혁의 의지가 강하고 또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밑바탕 공부도 비교적 탄탄하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대구가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지로 지목되고 있다. 일부 진보 쪽에 있다고 하는 인사들은 대구 사투리로 ‘꼬시다(고소하다)’는 듯이 대구가 무슨 당연한 업보를 받은 것으로 놀려댄다. 그들의 경망스러움은 지금 한국사회 전체를 휘젓고 있다. 특히 지난 번 ‘조국사태’를 계기로 하여, 그들이 가진 유해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대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언제든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세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이 패닉현상을 일으키고 있으나, 전염병은 사실 얼마 전만 해도 우리에게 붙어있었다. 과거의 비참한 모습이 우울하게 떠오른다.

어릴 때 내 고향 대구에서는 여름이 되면 흔히 콜레라가 발병했다. 환자가 발생한 집 앞에는 새끼줄이 처졌다. 당시에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치사율이 무려 50%까지도 되는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그럼에도 대수롭잖게 거리를 지나다녔다. 콜레라와 함께 장티푸스는 여름만 되면 찾아왔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수성교 밑을 흐르는 수성천변 고수부지에는 버린 영아들 사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사체를 담은 그릇은 피에 홍건하게 젖어있었고, 사체에서 나는 악취는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것으로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짓궂은 아이들은 사체를 향해 돌을 던지고, 그러면 피가 튀었다. 길을 단축하기 위해서 종종 수성교를 이용하지 않고 마른 하상을 지나 돌다리가 놓인 물길을 건너서 수성천을 넘었는데, 조금 기분 나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태연하게 일상의 일로 받아들였다.

어느 겨울날이었다. 우리들은 수성교 밑에서 썰매를 타고 있었다. 얼음이 녹는 때 생기는 ‘고무다리’(얇은 얼음이 휘어지며 물이 올라오고 하는 현상) 위로 빨리 갔다가 빠져나오곤 했다. 젊은 부부가 그 밑의 물 위에 조그만 상자를 하나 놓았다. 상자가 강물에 떠내려가기를 바라며 놓은 것이다. 부부가 자리를 뜨자, 그것이 뭔지를 아는 아이들은 일제히 돌을 상자에 던졌다. 찢어진 상자에서 핏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그 가난한 부부는 키울 힘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리라.

그런데 대구만 이렇게 비참하고 더럽고 절망적이었겠는가! 한국 전체가 다 그랬다. 우리 모두는 그 시궁창 바닥에서 이제 갓 올라온 것이다. 그러니 과거를 돌아보며, 조금은 대범하게 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갔으면 한다. 또 마치 대구만이 전염병을 겪어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방정맞은 주둥이는 이제 닫아주었으면 한다. 너의 어린 시절이나 네 부모의 젊을 때 모습을 떠올리면 절대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괘씸한 놈!

: 봄날 대나무는 더욱 푸르다. 모진 겨울의 삭풍을 이겨내고 늠름히 서있으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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