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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다음으로 한글 살릴 정책 편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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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다음으로 한글 살릴 정책 편 고종
  • 리대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 승인 2020.02.13 0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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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우리 글자를 나라글자(국문)라고 부르다

[리대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을 만들고 세상에 내놓은 세종대왕은 이 한글로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들 귀중한 글묶(책)을 짓고 한글을 알리고 쓰게 하려고 여러 가지 일을 했다. 한글을 과거 시험 과목으로도 하고 ‘효뎨례의’란 동전까지 한글로 만들어 쓰게 했다. 과거시험 과목으로 한 것은 나라 일을 하는 관리들에게 한글을 배워 쓰게 하려는 뜻이 있었고, 돈은 귀하고 유익한 것이고 사람 손에서 손으로 도는 것이니 귀하고 유익하게 쓸 글자임을 알리려는 뜻이었다고 본다. 참으로 좋은 뜻이었으나 세종이 한글을 만들고 얼마 안 되어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런 노력이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세종 다음에 그의 아들인 문종과 세조, 손자인 성종도 옛 책을 한글로 번역하고 한글을 알리고 쓰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한글로 공문서를 썼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1894년 고종 31년에 보고한 칙령1호에 처음으로 우리 글자를 국문(나라글자)이라고 부르며 공문서를 이 한글로 쓰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는 공문서식을 정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5월 8일에 반포식을 하고 널리 알렸다. 이는 1446년 한글을 쓰기 시작한 지 449년 만에 일어난 우리 말글살이 혁명이었다. 그동안 우리 글자를 우리 나라글자라고 떳떳하게 부르지도 못하고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정음, 언문, 반절 들들로 불리다가 일어난 일이다.

고종 32권, 31년 11월 21일(계사), 칙령 제1호에서 제8호까지 보고하다.

칙령(勅令) :제1호, 내가 재가한 공문 식제를 반포하게 하고 종전의 공문 반포 규례는 오늘부터 폐지하며 승선원 공사청도 아울러 없애도록 한다. (중략)

공문식(公文式) : 제14조, 법률∙칙령은 모두 국문(國文)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漢文)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으로 혼용한다.

고종 33권, 32년 5월 8일(무인), 공문식을 반포하다.

제1장 : 반포식(頒布式) -제9조. 법률, 명령은 다 국문으로 기본을 삼고 한문 번역을 첨부하며 혹은 국한문(國漢文)을 섞어서 쓴다.

1894년 칙령 공문식에 따라 한글로 공문을 쓰고 그것을 한문으로 번역하고 혼용한 본보기다.
1894년 칙령 공문식에 따라 한글로 공문을 쓰고 그것을 한문으로 번역하고 혼용한 본보기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제 글자를 가지고도 400년이 넘게 쓰지 않은 것은 중국 지배를 받기 때문에 그 눈치를 보느라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제 글자가 얼마나 훌륭한 글자인지 깨닫지 못했고 그 글자를 편리하게 쓸 연구와 노력도 부족했다. 그러던 가운데 19세기 서양세력과 일본이 이 땅에 들어와 중국과 다투면서 중국 영향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고종은 우리 말글을 살려서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문식을 제정하고 반포했다. 1890년에 미국인 헐버트가 한글로 ‘사민필지’란 교과서를 만들고 1896년에 서재필이 한글로 만든 독립신문을 만든 일과 함께 우리 말글살이 혁명과 같은 사건이었다. 고종 때에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가 쓴 한글편지가 있는 것도 그 때 분위기를 보여준다.

고종보다 100여 년 전 임금인 정조 때에 중국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박제가, 중국을 닮아야 한다는 박지원, 한문으로만 글을 쓴 정약용들 같은 중국 한문 숭배자들이 득세하면서 더 언어사대주의가 뿌리 내렸고 우리 자주정신이 식었다. 그러나 고종은 한글이 훌륭한 글자임을 깨달았고 그 우리 글자를 살려서 나라를 일으키려고 칙령으로 공문서라도 우리 글자로 쓰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는 공문식을 제정해 공포한 것이다. 이는 고종이 얼마나 나라를 일으키려고 몸부림을 쳤으며 영특하고 용단이 있는 지도자임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서 1907년에 지석영, 주시경처럼 한글을 사랑하는 이들이 나서서 학부 안에 국문연구소를 만들게 하고 1909년에 <국문연구의정안>이 나온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공개한 대원군이 쓴 한글편지(왼쪽)와 명성황후가 쓴 한글편지(오른쪽).고종의 손녀요 순종의 딸인 덕온공주는 한글로 아름다운 붓글씨를 많이 남기기도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공개한 대원군이 쓴 한글편지(왼쪽)와 명성황후가 쓴 한글편지(오른쪽).고종의 손녀요 순종의 딸인 덕온공주는 한글로 아름다운 붓글씨를 많이 남기기도 했다.

우리 말글과 자주정신을 살려 나라를 일으키려는 뜻이었으나 그 뜻이 이루어기 전에 일본에 나를 빼앗긴다. 그렇지만 1909년에 나온 ‘국문연구의정안’은 일본 강점기인 1933년에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으로 다시 살아나고, 고종 때 나온 ‘국문식’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라를 다시 세운 1948년 대한민국에서 ”공문서는 한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필요할 때엔 한자를 병기한다. “라는 법률 제호(한글전용법)로 다시 살아난다. 그러나 한자 숭배 언어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정치인, 공무원, 학자, 언론인들로서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어 아직도 한글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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