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의 '대사관 이야기']

"뭘 입지? - 외교관의 복장"
대통령 신년 하례회에 참석한
각국 대사들의 복장

대통령의 신년하례회 초청장.
대통령의 신년하례회 초청장.

* 대사로 나가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아, 이제 나도 연미복이라는 걸 입게 되는걸까?" 하는 것이었다. 연미복이란 제비 연(燕) 자, 꼬리 미(尾)자가 말해 주는 것처럼 제비꼬리를 달고 있는 것 같은 옷이다.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입는 옷, 베짱이에게 어울리는 듯한 옷, 바로 내 페북 프로필 사진에 올라있는 옷이 바로 연미복이다. 영어로는 Cutaway, 독일어로는 Frack이라고 한다.

당장 주재국 대통령께 신임장 증정할 때도 입어야 하고, 각종 외교행사 때도 입어야 한다는데 우선 걱정이 앞섰다.

"그걸 어디 가서 구하지?"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내 주변에서 그런 걸 입은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걱정은 더 컸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왼쪽은 뮐러 개발협력부 장관.모두 연미복 차림이다.(사진=정범구 대사)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왼쪽은 뮐러 개발협력부 장관.모두 연미복 차림이다.(사진=정범구 대사)

* 3주에 걸쳐 공관장 교육을 받았지만 거기서도 연미복을 어떻게 구하는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알음알음으로 물어본 결과 아마 임지에 가면 그걸 빌려주는 데가 있을 거란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 긴가민가 했지만 결국 연미복 없이 베를린에 도착했다. 대사관 업무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 중에도 생각은 계속 "연미복은?..."에 머물러 있었다. 결국 한 직원으로부터 "연미복 빌려주는 데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이 문제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 놓은 것도 잠시, "과연 내게 맞는 사이즈가 있을까?" 하는 또 다른 걱정이 앞섰다.

어쨌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독일 대통령께 연미복 차림으로 신임장을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사진(페북 프로필)으로 보니 대통령보다 내 연미복이 더 맞춤같아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 오늘 대통령궁에서 신년하례회가 있었다. 드레스 코드는 연미복이거나 각국 고유의상, 또는 정장이다. 지난 해에는 연미복을 빌려입고 나갔는데, 올해는 빌리는 게 번거로워서 그냥 한복을 입고 갔다.

한복 효과는 톡톡히 봤다. 우선 170여 명 외교사절 중 대부분은 연미복 차림이고 극히 일부만 민속의상을 입고 왔다. 네팔, 시에라리온,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대사 정도가 고유의상을 입고 왔다. 중국대사는 "중산복"이라고 하는 인민복을 입었고 러시아대사는 군복 같은 유니폼을 입었다.

인민복 차림의 중국 대사, 연미복 일본 대사.(사진=정범구 대사)
인민복 차림의 중국 대사, 연미복 일본 대사.(사진=정범구 대사)

몇 명 입고 오지 않은 고유의상 중에서도 한복이 유난히 돋보이는 모양이다. 천연실크 재질에다 색상, 디자인 모두 눈에 띤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말을 걸어오는 중에 스위스 대사가 각별한 관심을 보이며 옷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한복"이라고, "한국의 옷"이란 뜻이라고 설명했다. 나중에 혹시 주한 스위스 대사로 부임하면 내가 한 벌 해 주겠다고 하니 자긴 이번 독일대사를 끝으로 은퇴한다고, 아쉽다고 한다.

* 이 공간을 통해 나는 외교를 종종 "영업", 또는 "해외영업"에 비유해 왔다. 외교관들은 결국 "대한민국"이란 브랜드를 어떻게 매력적인 존재로, 다른 나라와 어떻게 차별화된 존재로 부각시킬 것인가 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군복같은 유니폼을 입은 러시아 대사와 연미복 차림 에콰도르 대사.(사진=정범구 대사)
군복같은 유니폼을 입은 러시아 대사와 연미복 차림 에콰도르 대사.(사진=정범구 대사)

 

"짧은 시간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원조를 받던 세계 최빈국에서 원조를 주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나라, 그러면서 민주화도 모범적으로 달성한 나라...."

이런 이미지에 더해 K-pop, 한식, 한류, 한복 등 우리 문화의 독특함도 매우 중요한 sales point가 된다.

세일즈맨의 우상이라 할 봉이 김선달은 주인 없는 대동강물도 팔아 먹었다는데 거기 비하면 우린 얼마나 영업할 것이 많단 말인가! 정말 세계는 넓고, 영업할 거리는 많다.

그나저나 한복을 입고 나오니 화장실 가는 일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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