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 김병재 작...신예 감독 이우천 연출
대학로 '아름다운극장'...29일까지 '부장들' 공연
'대통령 당선자 연루된 여배우의 자살' 특종감 놓고
부장회의서 갑론을박 장면 실감나게 그려
특종 다루는 기자들의 애환과 속성 담아
기자들 애환과 속성 묘사...장기공연 기대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부장들'.(사진=정중헌 이사장)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부장들'.(사진=정중헌 이사장)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이달 29일까지 공연하는 김병재 작, 이우천 연출의 <부장들>은 신문 편집의 중추인 데스크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사의 우선순위와 사안을 결정하는 회의장을 무대로 전개되는 연극이다.

영화나 TV드라마에 기자나 신문사가 가끔 나오지만 기자들이 볼 때 어색하거나 촌스러울 때가 적지 않았다. 펜타곤 문서를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의 실화를 다룬 <더 포스트>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한 <스포트라이트>처럼 정통 저널리즘 무비도 있지만 국내에선 제대로 그려내지 못해온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연극계 유망주인 오세혁의 <보도지침>에 이어 <부장들>이 신문 내부의 실체나 언론의 사명을 본격 다루면서 재미까지 살려내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연극 <부장들>의 산파는 필자다. 매일경제, 문화일보를 거쳐 이데일리 논설실장을 지내고 퇴임한 기자 후배 김병재가 희곡을 써보았다며 일독을 청했다. 대통령 당선자가 연루된 여배우의 자살(?)이라는 특종감을 놓고 부장회의에서 갑론을박, 무엇이 진실이고 공익인지를 놓고 격돌하는 내용인데 신문사 경험이 풍부한 작가가 써서 사실감이 묻어났고, 이야기의 전개며 대사가 희곡으로 읽는 데도 흥미진진했다.

김 작가는 “우리 사회 일부에서 기자에 대한 비판과 오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팩트(fact)를 든 기자들의 열정, 근성, 고민과 아픔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는 이 희곡이 공연되기를 원했고, 필자는 대학로에서 감각이 뛰어난 신예 이우천 연출을 연결시켜 주었다.

둘이 만나면 시너지가 폭발하리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신문 편집과정을 모르는 이우천 연출은 김 작가와의 일대일 대화를 통해 편집국 부장회의 분위기를 익히면서 연극적 상상력을 보태 문자로 된 희곡을 입체화해 나갔다.

“편집국이야말로 그 신문사의 가장 내밀한 공간이자 비밀스러운 아지트라고 봐요. 특히 부장회의는 신문이 어떤 내부 기능을 거쳐 활자화되어 독자들과 만나는지를 볼 수 있는 실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희곡을 분석한 이우천 연출은 각 분야 부장들의 캐릭터를 살려내는 데 중점을 두면서 특히 그곳에서 벌어지는 데스크들 간의 ‘피튀기는 대결’이라는 볼거리를 만들어 냈다. 연출의 계산은 맞았고, 관객들은 실체를 볼 수 없었던 신문 내부의 속살뿐 아니라 개성이 각각인 부장들의 캐릭터에 흥미를 느끼면서 마침내 진상이 보도되는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책상과 의자, 벤치가 전부인데다 영상도 쓰지 않은 무대에서 배우들아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화술과 연기력뿐이었다. 이우천 연출은 캐스팅을 개방했고, 그 결과 실력 있는 배우들을 한데 모았다. 극단 대학로극장 공연이지만 국립극단 출신의 연기파 한윤춘을 비롯 최근 <변신>에서 아버지 역을 했던 손성호, 탤런트로 활약하면서 연기 내공이 갖춰진 김홍표 등으로 중심축을 구성한 것이다.

초연인 이 작품에 관객이 몰리고, 현직 기자들이 보아도 공감하는 연극을 만든 것은 작가와 연출의 힘도 컸지만 무엇보다 배우들이 저마다 데스크의 캐릭터를 살려내고, 강과 온으로 힘을 안배해 요소요소에서 폭발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초반에는 문화부장 역 양대국이 코믹한 연기로 시선을 모았고, 경제부장 역 김장동이 듬직하면서도 명료한 대사로 회의장 대화를 이어가는 고리 역할을 잘 해냈다. 편집부장 역 박정민은 안정감 있게 극을 받쳐 주었고, 국제부장 역 최소영은 홍일점 데스크로서의 역할을 시원하게 소화해냈다.

극중 NGO로 활동하는 박미선이 깔끔한 연기로 사회부장 김홍표와 앙상블을 잘 이뤄냈고, 사회부 기자 역 서한결과 봉 감독 역 현승철이 역할은 크지 않았어도 ‘똑 따먹는’ 개성 연기를 펼쳤다. 그리고 생활연극 배우 김혜숙이 극의 앞뒤를 열고 닫는 청소부 역으로 눈길을 끌었다.

왼쪽부터 사회부장 김홍표, 편집부장 박정민, 필자(정중헌 이사장), 정치부장 한윤춘, 작가 김병재, 편집국장 손성호.(사진=정중헌 이사장)
왼쪽부터 사회부장 김홍표, 편집부장 박정민, 필자(정중헌 이사장), 정치부장 한윤춘, 작가 김병재, 편집국장 손성호.(사진=정중헌 이사장)

압권은 정치부장 역 한윤춘과 사회부장 역 김홍표의 연기 대결이었다. 대통령이 연루된 연예인 자살 의혹 사건을 보도해야 한다는 사회부장 주장에 정치부장은 사익과 공익을 위해 신중해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올해 구태환 연출의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에서 좋은 연기로 연극배우협회가 주는 연기상을 받는 한윤춘은 국립극단 출신답게 정확한 화술과 진정성을 보이는 연기로 강렬한 인상의 정치부장 역을 멋지게 해냈다. 사회부장 역 김홍표는 탤런트라는 선입견을 깨고 디테일한 표정 연기와 함께 폭발적인 힘으로 한윤춘과 대결을 벌였고, 그 장면들이 이 연극을 생동감 넘치게 했다.

<부장들>은 기자 출신이 썼지만 다큐가 아닌 연극이다.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극을 끌어가는 힘인데 이우천 연출은 강약을 잘 대비시켜 스피드하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극을 전개했다. 특종을 놓고 서로 가치관이 다른 부장들의 충돌을 ‘피튀기는 전쟁’처럼 보여주다가도 선후배 따뜻한 인간 관계도 보여준다. 특종이라는 큰 사건을 다루면서 기자들의 애환과 속성까지도 보여주고자 애쓴 흔적이 보였다. 이 작품은 한차례 다듬고 무대조건 등을 개선하면 롱런도 가능한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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