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관료들은 영혼이 없어야 한다?
국가수반-집권당 제시 하위목표를
영혼 없이 수용해서는 곤란

이경묵 교수
이경묵 교수

관료들이 영혼이 없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통령이나 집권당이 입맛대로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관료들이 반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런 비판이 타당한지에 대해 검토해 보았습니다.

관료제와 민주주의: 관료들은 선출된 권력이 제시하는 정책 목표를 수용해야 합니다

정부가 관료제로 운영될 경우에 관료들은 해당 직무에 대한 전문성과 직무를 수행하면서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정부를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료들이 지배자로서 그들에게 권한을 주고 그들에게 월급을 주는 국민들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세금을 더 많이 걷고 더 많은 권력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인 대규모 예산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행정 관료들을 견제합니다. 삼권 분립을 기반으로 정부 조직을 설계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 관료 조직을 통제하기 위해 활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선거를 통해 국가수반을 뽑고, 그들이 행정 관료 조직을 지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선출된 권력은 국가가 추구해야 할 가치의 우선순위, 행정 관료 조직이 따라야 할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보통 좌파 정권에서는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시하고, 우파 정권을 분배보다 성장을 우선시합니다. 행정 관료들은 선출된 권력이 제시하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들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관료들은 영혼이 없어야 합니다.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관료제의 폐해를 제어해야 한다는 막스 베버의 핵심 주장입니다.

정책 목표 달성 수단과 관련해서는 관료들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국가수반이나 집권당이 추구하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하위 목표를 설정하거나 정책 수단을 강구할 경우에는 행정 관료들에게 영혼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수반이나 집권당이 제시하는 하위 목표를 영혼 없이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인들보다는 관료들의 전문성이 높습니다. 그 분야를 오랫동안 다뤄왔고 다양한 사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상위 목표를 설정하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하위 목표나 정책 수단과 관련해서는 관료들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환경 보호가 상위 목표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탈원전을 하겠다고 하면 탈원전이 환경 보호를 위해 최선의 수단인가에 대해서는 발언을 해야 합니다. 국방력 강화가 상위 목표라면 그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관료와 장성들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정책 목표 달성 수단의 윤리성에 대해 관료들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정책 목표 달성에 집착하다 보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반인륜적인지, 비윤리적인지를 판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국가수반이나 집권당이 제시하는 정책 수단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국가수반과 그 핵심 측근들이 모여 정책 수단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때는 "집단 사고"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주 비윤리적인 대안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아래의 집단 사고에 대한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kmlee8302/221607037298

집단 사고의 가장 큰 폐해 중 하나는 반인륜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의 집단 사고 예에서 인민 사원 사례나 사이비 종교 집단은 집단 변사 사건입니다. 국가수반이나 집권당에서 반인륜적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실행하라고 할 때 행정 관료들은 영혼을 가지고 반발해야 합니다.

​수직적인 위계가 있는 관료 조직에서는 상명하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대표적인 예가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입니다. 유대인을 수용소로 수송하는 일을 맡았다가 독일 패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쳐 15년간 숨어살다가 이스라엘에게 납치된 전범입니다. 이스라엘에서 33번 재판을 받았는데 37개 국가에 생중계되었다고 하지요. 정신과 의사들이 판정한 결과 정신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이고,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상당히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고, 좋은 아빠이면서 좋은 남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지시받은 업무를 잘 처리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이고 자신의 손으로 한 명도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내용을 가지고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베스트셀러를 썼지요.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 정상인도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행동은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 연구 결과에서 드러났습니다. 아이히만의 사례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밀그램 교수는 학습 실험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4.5 달러를 지급한다고 신문에 광고하면서 피험자를 모았습니다. 예일대학교 근처에 사는 20대에서 50대까지의 남성 40명이 실험에 참여했습니다. 4.5달러는 실험 결과와 무관하게 주어지고, 학습 실험이 실제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모른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개별 실험에는 실험자, 피험자, 학생이 참여했습니다. 실험자와 학생은 밀그램 교수와 짜고 연기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피험자에게 학생은 자발적으로 이 실험이 참여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학생은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의자에 묶여 있습니다.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피험자가 전기 충격을 가하는 버튼을 누르게 했습니다. 15 볼트부터 450 볼트까지 15볼트 단위로 30개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틀린 답을 하면 15볼트짜리 버튼을 누르고, 두 번째로 틀리면 30볼트의 버튼을 누르는 식으로 틀리는 문제의 수가 많아질수록 더 강한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했습니다. 각 버튼에는 몇 볼트인지를 표기해 두었고, 어느 정도의 충격인지를 글로 써 두었습니다. "약간의 충격(Slight Shock)"부터 "위험: 매우 심한 충격(Danger: Severe Shock)"까지 30개의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전기 충격이 매우 고통스럽겠지만 세포 조직을 영구히 파괴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해 주었고, 버튼을 누르라는 실험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47세의 회계사에게 학생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남성 백인으로 아일랜드계 미국인처럼 생겼고, 온화한 매너에 남들이 좋아할 만한 인상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전기 충격의 강도에 따라 어떤 반응을 할지를 훈련시켰습니다. 피험자는 학생이 있는 방 바로 옆에 있는 방에서 버튼을 누르게 했습니다. 전기 충격이 300 볼트보다 낮을 때에는 학생의 목소리나 저항 신호를 피험자가 들을 수 없게 했습니다. 300볼트에서는 학생이 벽을 치도록 해서 자신의 고통을 들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전기 충격이 가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연기를 한 것이었습니다.

​실험자 역할은 31세의 고등학교 남자 생물 선생님이 했습니다. 이 선생님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고 엄격한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했습니다. 피험자가 버튼을 누르려 하지 않으면 "버튼을 누르세요"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주저하면 "이 실험은 당신이 버튼을 누르는 것을 요구합니다"라고 말하게 했고, 그래도 주저하면 "당신이 버튼을 누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라고 말하게 했고, 그래도 주저하면 "당신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버튼을 꼭 눌러야만 합니다"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누르지 않으면 실험이 끝납니다.

​실험 결과는 상당히 놀랍습니다. 학생의 반응을 들을 수 없는 275 볼트까지는 멈춘 피험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벽을 치면서 고통을 호소한 첫 단계인 300볼트 버튼을 누른 후 5명이 그만두었습니다. 40명의 피험자 중에서 26명이 마지막 단계인 450 볼트의 버튼까지 눌렀습니다. 450볼트의 전기 충격을 준다는 것도 알고, 학생이 벽을 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실험자의 권위에 복종했습니다.

​이 실험과는 별개로 예일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4학년생 14명에게 위 실험 설계의 내용을 설명해 주고,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직업에서 뽑은 100명의 가상적인 피험자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이 학생들에게 실험 결과를 알려 주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학생이 450볼트 버튼까지 누르는 피험자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100 명 중에서 3 명이 450 볼트 버튼을 누를 것이라고 예측한 학생이 1명 있었는데, 평균적으로 1.2명의 피험자가 450볼트 버튼을 누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가상적인 상황에서의 예측치와 실험 상황에서의 예측치가 매우 다르다는 결과를 보여 줍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관료들은 대통령이나 상급자에게 충성하지 말고 국가, 법,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에 충성해야 합니다

​관료들은 정치인이나 상급자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관료제의 근본 취지입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례나 미래 그램의 실험에서처럼 상급자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관료제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관료들은 선출된 권력이 추구하는 가치를 수용해야 하지만 그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하는 하위 목표나 정책 수단이 타당한 지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관료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취약계층의 소득을 높여 경제를 성장시켜보자는 것입니다. 웬만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경제 관료라면 2년간 최저임금을 29.1% 올리면 취약계층에서 실업자가 대폭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알 것입니다. 잘못된 정책 수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목소리를 내는 경제 관료를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공사, 한국수자원공사에 근무하는 분들 중에서 필자가 만나 본 분들은 한결같이 탈원적 정책이 잘못되었고, 한전 공과대학교 설립이 잘못되었고, 4대강 보를 해체하겠다는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만날 때는 말하지만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4대강 보를 해체하는 것보다는 녹조가 생길 것 같은 여름에는 수문을 개방했다가 물이 필요한 시기에는 수문을 닫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런 공사에서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 중에서 공개적으로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밝힌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전체주의가 아니라 하위 정책 목표와 수단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열린 정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권위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이 권력을 남용합니다. 한전 공과대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 남용에 저항하는 관료들을 한직으로 내 몰거나 옷을 벗게 합니다. 유재수 전 부산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행태는 전체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에서 자주 발견되는 행태입니다. 국가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를 선출된 권력에서 제시하되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열린 사회, 열린 정부가 되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

Arendt, Hannah, and Jens Kroh. Eichmann in Jerusalem. New York: Viking Press, 1964.

Milgram, Stanley. "Behavioral study of obedience." Th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67.4 (1963)

Weber, Max, Charles Wright Mills, and Hans Heinrich Gerth. From Max Weber; Essays in Sociology. Translated, Edited and With an Introduction. by HH Gerth and C. Wright Mills.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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