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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구 대사관 이야기(20)] "웬 통일?" "그게 과연 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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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구 대사관 이야기(20)] "웬 통일?" "그게 과연 가능해요?"
  • 정범구 대사
  • 승인 2019.11.1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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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글쓰기’ 신문은 주독일대한민국대사관 정범구 대사의 ‘대사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 대사는 대사관 주변 이야기와 한독 관계 등을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간결하고 논리적인 문장으로, 외교관의 소소한 일상과 깊이 있는 사색, 강대국들과의 이해관계를 담고 있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쓰기’의 모범사례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현장 사진을 곁들여 국민들에게 외교관이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범구 대사는 충북 음성 출신으로 16대, 18대 국회의원을 거쳐 지난해 1월 독일 대사로 부임했습니다.
 

* 얼마 전,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이 되었다. 그 전 주에는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다. 그러나 장벽이 무너지기 하루 전까지, 사람들은 과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실제로 "경계"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자유로이 오가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 무너지고 나서야 그게 가능하다는걸 알았지, 무너지기 직전까지 사람들의 상상력은 그 벽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벽을 허문다는 것이?

독일 통일 과정을 지켜보면서, 또 독일 통일로 촉발된 유럽통합을 지켜보면서 내가 자주 가졌던 의문은 종종 배신 당했다. 89년 여름, 수많은 동독 국민들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체코 프라하 서독 대사관 담장을 기어오를 때 까지도 설마 동독이 무너지기야 하겠나 생각했다. 장벽이 무너졌을 때 까지도 동독에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밀려 들겠구나 생각했지, 저렇게 빨리 통일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40년간 건설됐던 동독 사회주의 체제는 강고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전후 독일을 분할 점령했던 미, 소, 프, 영 등 4대국 중 누구도 독일 통일을 흔쾌히 받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독일은 통일되었다.

* 통일된 독일은 유럽 통합의 견인차 노릇을 하였다. 독일 주도로 1992년 마스트리히트 협정이 체결되는데 이를 통해 회원국 내 자유로운 인적, 물적 이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1990년 귀국 후 몇년만에 다시 나와 본 유럽은 너무 달라져 있었다. "국경"이 없어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리로 기차를 타고 갔는데 뭔가 이상했다. 국경 검문이 없었던 것이다. 과거 같으면 국경 지대에서 기차가 정차하고 상대국 관리가 올라와 승객들 여권과 짐을 검색했을텐데 그런 과정이 사라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국경이, 검문이 사라질 수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것들이 사라진 것이다.

* 20세기와 21세기를 거쳐 살아 오면서 수많은 역사적 격변을 지켜봤다. 20세기에 일어났다 20세기를 못 넘기고 사라졌던 소비에트 실험도 그게 시작됐을 때나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1979년, 홍콩-방콕-카라치-아테네 등 남방항로를 거쳐오는 루프트한자를 타고 23시간만에 독일에 도착했다. 이 이야기를 젊은이들에게 해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게 가능해요?"라고 역으로 물어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11시간만에 프랑크푸르트로 오는 항로는 소련 말기인 1990년대 초, 우리 북방정책의 성과로 가능했던 것이다. 80년대까지는 상상조차 해볼 수 없었던 소련 도시들, 모스크바, 쌍 뻬쩨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톡 거리에는 오늘날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흘러 넘친다.

*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어제 베를린 거주 한인 청년들 주최 통일 행사가 있었다. 주제가 도발적이다.

"웬 통일?"

그러나 이 도발적 질문이 반드시 이 질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기를....

"그게 과연 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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