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기정(구암고 교사)

(진보적 교육단체에 드리는 제안문)
문재인 대통령의 10월 25일 제안은
진보진영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

(1) 서열화된 고교체계 해결하라
(2) 최상위권 대학 학종 비중 축소하라
(3) 서울 상위권 대학 정시 비중 확대하라

교육 발전이란 보편적 이익 관점에서도
총선 승리라는 진보진영 이익 관점에서도
문 대통령의 제안은
진보교육단체가 크게 환영해야 할 일
그런데 이들이 오히려 앞장서
문 대통령의 제안에 반대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글쓰기' 신문에서는 정시 확대 반대에 관한 의견 글도 환영합니다.]

이기정 교사
이기정 교사

문재인 대통령과 진보 교육단체 사이에 형성된 대립 갈등 구도를 지지 협력의 구도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진보 교육단체들은 지난 10월 25일의 문재인 대통령 제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환영해야 합니다.

첫째, 서열화된 고교체계 해결(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제안에 대해선 정말 전폭적인 지지 표명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 고교서열화 해소라는 진보 진영의 오랜 소망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진보 교육단체는 대통령의 제안이 실질적인 법령 개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여당과 야당을 강하게 압박해야 합니다.

둘째, 서울 상위권 대학, 즉 최상위권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비중 축소 제안도 찬성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축소되는 부분 중 절반을 학생부교과전형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했으면 합니다.

셋째, 서울 상위권 대학 정시 비중 확대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으면 합니다. 다만 정시를 수능성적 100%로 하지 말고 ‘수능성적+내신성적’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했으면 합니다.

<제안 내용>

지난 10월 25일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취지를 강하게 피력하셨습니다. 정확한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을 중심으로 사실상 서열화된 고교체계가 수시 전형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과도한 교육 경쟁, 조기 선행교육과 높은 교육비 부담에 따른 교육 불평등, 입시 위주 교육으로 인한 일반 고교와의 격차를 낳고 있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더이상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역시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리는 문제이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문재인 대통령)

서열화된 고교체계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은 제안입니다. 대통령의 말씀을 받아 교육부 장관과 민주당 원내대표까지 실행 의지를 강하게 밝혔습니다. 일반고로의 ‘일괄전환’이라는 명확한 표현까지 사용했습니다. 너무나 유리한 정세가 형성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안타깝게도 진보진영이 앞장서 대통령의 제안에 반대하는 형국입니다. 물론 실제 마음이야 찬성이겠지요. 하지만 최근 진보진영 교육운동단체들의 행동과 발언을 보면, 특히 71개 교육단체의 청와대 앞 기자회견을 보면, 진보진영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도와는 다르게 그러한 구도-프레임을 형성하고 있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민단체 토론회 참여 중인 이기정 교사.(사진=이기정 교사 제공)
시민단체 토론회 참여 중인 이기정 교사(왼쪽 두 번째).<사진=이기정 교사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구체적 교육정책은 실질적으론 다음 3개입니다.

(1) 서울 상위권 대학, 즉 전국 최상위권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비중 축소
(2) 서울 상위권 대학의 정시 비중 확대
(3)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어떤 것이 제일 중요할까요? 어떤 것이 우리 교육에 정말 긍정적 파급력을 미치는 일일까요? 우리 교육운동세력들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걸까요? 저는 단연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고교서열화 해소를 위한 불꽃은 처참히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대통령, 교육부 장관, 여당 원내대표가 동시에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강력히 주장하는 행운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일괄전환’이라는 올바른 방책까지 언급했습니다. 일괄전환은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여 고교서열화를 해소하는 가장 올바른 방책입니다. 교육청의 재지정 평가를 통한 점진적 전환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그동안의 실패로 입증되었습니다. 갈등과 혼란만 있었을 뿐 사실상 성과가 전무 했습니다. 재지정 평가를 통과한 학교에는 면죄부를 주었고, 탈락한 학교는 법원이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전부 받아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의지를 담아 교육부 장관과 집권 여당 원내대표가 일반고로의 일괄전환이라는 올바른 방책까지 제시했습니다. 고교서열화 해소라는 진보진영의 숙원이 이루어질 너무나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 동기야 다분히 정치적이겠지만, 지지율 향상과 득표를 위한 목적이 컸겠지만, 어쨌든 문재인 대통령이 꺼져가던 불꽃을 다시 살려냈습니다.

그러나 진보적 교육단체의 잘못된 행동으로 대통령이 지폈던 불꽃이 다시 꺼져가고 있습니다. 진보적 교육단체들이 대통령이 지핀 불꽃을 더 크게 키워내기는커녕 오히려 앞장서 꺼트리고 있습니다.

지금의 구도-프레임만 보면 대다수 진보 교육단체가 대통령의 제안에 반대하는 모양새입니다. 의도는 그렇지 않았을 텐데 대통령 제안 전체를 반대하는 모양새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고교서열화 해소라는 중요한 과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는 상황이 형성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진보 교육단체들의 잘못입니다. 지금 진보 교육단체는 문 대통령을 향해 일종의 허수아비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민 정서와 반대되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국무회의 장면.(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청와대 국무회의 장면.(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청와대 앞에 모인 71개 교육단체는 마치 대학 입시 전반에 정시가 확대될 것처럼 말하며 정시 확대를 반대했지만 문 대통령이 제안한 것은 대학 전체의 정시 확대가 아닙니다. 서울 상위권 대학, 즉 전국 최상위 대학의 정시 확대를 제안한 것입니다. 10개 대학이라면 전체 대학의 1/40에 불과하고 20개 대학이라 해도 1/20에 불과합니다. 최상위권 대학들의 학종을 전부 폐지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 대학의 학종 비중이 너무 높으니 그 비중을 다소 낮춰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은 정확히 다음과 같습니다.

“문제는 입시의 영향력이 크고 경쟁 이 몰려있는 서울 상위권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이 그 신뢰도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대학들도 좋은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대학 입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 대학에 정시 비중을 일정 수준 이상 지켜줄 것을 권고한 바 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국민의 시각입니다. 수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때까지 서울의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수시와 정시 비중의 지나친 불균형을 해소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주길 바랍니다.”(문재인 대통령)

아시다시피 학종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분노는 정말 압도적입니다. 학종은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입시입니다. 그런데 서울 상위권 대학은 입시를 학종 위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 대학의 학종 비중을 축소해달라는 대통령의 제안은 국민 정서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시는 수능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얼마든지 수능성적+내신성적으로 운영 가능합니다.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정시를 운영하는 대학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대부분이 그렇게 했습니다.

최상위권 대학이 학종 비중을 지금처럼 높게 유지하는 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최상위권 대학의 학종 비중이 그렇게 높아도 학종을 통해 이들 대학에 진학하는 평범한 일반고 학생은 학급당 1명에도 크게 못 미치는데, 진보 교육단체들이 최상위권 대학의 학종을 수호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게 정말 타당한 일일까요? 그사이에 우리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이라는 진보진영의 오랜 소망을 내팽개쳐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간곡히 제안 드립니다. 잘못 형성된 대결 구도를 바꿔야 합니다. 대통령의 제안에 반대함으로써 형성된 대립 구도를 대통령의 제안에 찬성하고 지지하는 협력 구도로 전환해야 합니다. 대통령 제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일부 내용만의 수정을 요구하는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첫째, 서열화된 고교체계 해소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제안을 뜨겁게 환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법령 개정에 착수할 것을 촉구해야 합니다. 법령 개정이 없는 일반고로의 전환 선언은 무의미합니다. 진보 교육단체들이 나서 강력하게 법령 개정을 촉구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제안은 그야말로 립서비스에 그칠 수 있습니다. 진보진영마저도 대통령의 제안에 침묵하고 있는데, 모양새만 보면 진보진영조차도 반대하는 구도인데, 정부와 여당이 실제적인 법령 개정에 나설 이유가 없습니다. 대통령의 제안에 뜨거운 지지를 보내고, 이와 함께 법령 개정이라는 구체적 시행조치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둘째, 최상위 대학의 학종 비중을 축소하자는 제안도 찬성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상위권 대학 입시는 학종 비중이 너무 높습니다. 축소하는 게 타당합니다. 무엇보다 국민 다수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 다수의 마음을 우리 진보 교육단체가 외면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일부 내용의 수정은 요구할 수 있습니다. 축소된 학종 비율 중 일부를 학생부교과전형으로 돌릴 것을 제안해야 합니다. 최상위권 대학 입시에는 지역·학교 간 평등에 크게 기여 하는 교과전형이 극히 미미합니다. 순수한 형태의 교과전형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축소된 학종 비중의 일부를 교과전형으로 돌려야 한다는 제안은 다수 국민이 크게 지지할 것입니다.

셋째, 최상위권 대학의 정시확대 제안도 수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시는 현재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입시입니다. 다만 일부 내용의 보강을 요구하면 됩니다. 확대된 정시를 수능만으로 운용하지 말고 평범한 일반고에 유리해지도록 정시를 수능성적+내신성적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하면 됩니다. 정시는 얼마든지 수능성적+내신성적으로 운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시를 요구하는 국민도 얼마든지 수용해 줄 것입니다.

지금 현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잘못 형성된 대립 구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문 대통령의 제안에 반대하는 구도를 찬성하는 구도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들 통해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정책을 다시 국민적 화두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서열화된 고교체계 해소라는 진보진영의 오랜 소망이 성사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진보적 교육운동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기정(전교조 조합원, 홍사당弘師黨 회원, 징검다리교육공동체 회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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