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이경묵 교수
이경묵 교수

판사들이 함께 모여 학습하는 연구회 혹은 학회가 여러 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연구회가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실무자 공동체: 판사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관심 사건 영역이 유사한 판사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는 연구회는 장려할만한 일입니다. 경영학에서는 이런 연구회를 실무자 공동체(Community of Practice)라고 합니다.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동시에 쌓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적극 장려됩니다. 유사한 주제에 대한 관심을 가진 판사들이 모여 각자 공부한 것을 공유하고 서로의 전문성을 함께 높여가면 판사들의 실력이 좋아지니 국민들 입장에서도 좋은 일입니다. 법 이론이나 판례를 공부하고, 이를 논문으로 작성하고, 여러 판사들 앞에서 발표하고 코멘트를 받는 과정에서 논문을 쓰는 판사의 실력도 늘어나고, 연구회에 참여한 다른 판사들의 실력도 늘어납니다. 자기들끼리만 공부하지 않고 전문가를 초빙해서 배우는 것도 하면 더 좋겠지요. 개별적으로 주제를 선정하여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지식을 쌓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세상이 복잡해지고, 사건의 내용도 복잡해지고 지능화되고, 과거에 없던 유형의 사건들이 생기면서 판사들이 이 추세에 맞게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야 하는데 연구회가 이런 것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런 추세에 맞추어 판사들이 사건 영역별로 전문화하는데도 큰 도움을 줍니다.

또 다른 장점은 유사한 사건을 다루는 판사들 간의 지식의 표준화입니다. 유사한 사건에 대해 누가 재판을 하느냐와 무관하게 유사한 판결이 나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높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회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여기에 더해 판사들을 사건 영역별로 전문화한다면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더 높아질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kmlee8302/221695666976

이념적 성향의 연구회: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습니다

판사의 정치적 성향은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필자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공익위원으로 심판을 볼 때의 경험입니다. 노동위원회의 심판은 사용자와 근로자 간의 분쟁에 대해 판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세 명이 합의해서 결론을 내기 때문에 합의부 재판이라고 보면 됩니다. 정치적 성향이 강한 분이 심판에 들어가 있으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좌파적 성향이 강한 분은 근로자의 잘못이 매우 큰 데도 기업에게 근로자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화해하도록 유도하고 화해가 안될 경우에는 근로자에게 유리한 결론을 끌어내려 했습니다. 반면에 기업의 경쟁력이나 질서유지를 강조하는 우파적 성향이 강한 분은 기업에게 유리한 결론을 끌어내려 했습니다. 사건 당사자들이 심판 결과가 심판들의 정치적 성향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뢰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심판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행정법원으로 가져갑니다.

사법부에 사건 영역별 연구회가 아닌 이념적 성향을 가진 판사들끼리 모여 공부하는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좌파적 성향이 강한 판사들의 연구회와 우파적 성향을 강한 판사들의 연구회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좌파적 성향을 가진 연구회에서는 좌파적 성향의 판결이 옳다는 믿음을 강화시키고, 우파적 성향을 가진 연구회는 우파적 성향의 판결이 옳다는 믿음을 강화시킵니다. 이런 정치적 성향은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에 대한 판결이라면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판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동일한 사건에 대한 판결이 크게 달라진다면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성향의 판사에게 배당되는가가 운에 의해 결정되니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습니다.

연구회의 부작용 1: 관선 변호

판사들끼리 모여서 공부하다 보면 그들 간의 신뢰와 지원 관계가 형성됩니다. 사건 당사자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판사를 찾아보고, 그 판사를 통해 자신의 사건을 맡은 판사에게 로비를 할 수 있습니다. 법원장이 재판에 직접 간섭하거나 법원행정처에서 법원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재판에 간섭하는 것을 관선 변호라고 하지요. 판사가 사건을 맡은 판사에게 로비하는 것도 관선 변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선 변호가 전관예우보다 10배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고 하지요. 연구회는 판사들 간의 새로운 인맥을 만들어 관선 변호를 많아지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험보다는 실무자 공동체가 주는 효익이 더 큰 것처럼 보입니다. 연구회가 없더라도 판사들끼리도 이런저런 이유로 인맥을 맺고 있기 때문에 연구회가 만들어주는 인맥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구회의 부작용 2: 사법부의 정치화

이것보다 더 큰 위험은 사법부의 정치화입니다. 이념적 성향의 연구회가 사법부를 정치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측면에서 법원 조직은 검찰만큼 취약한 구조입니다.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대법관이 과반이 되면 사법부가 그들에 의해 장악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이 판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관선 변호를 할 수 있습니다. 하급 법원이나 고등 법원에서 대법원의 정치적 성향에 맞지 않는 판결이 나오면 당사자들이 사건을 대법원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을 수는 없습니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 좌파적 성향을 가진 연구회 출신들이 득세하고,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 우파적 성향을 가진 연구회 출신들이 득세한다면 사법부에서 성과주의가 실현되지 않습니다. 정권 교체와 연동되어 승자와 패자가 바뀌어 망해가는 MBC나 KBS 같은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 MBC와 KBS가 왜 망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kmlee8302/221589356137

사법부가 MBC와 KBS 같은 조직이 되고 정권 교체에 따라 법원에서 승자와 패자가 달라진다면 사법부는 MBC와 KBS처럼 망하는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이런 조직이 되면 판사들은 열심히 재판을 보기보다는 줄 서기를 해야 합니다. 이런 판사 생활에 염증을 느낀 유능한 판사들이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습니다. 판사들의 평균 역량이 떨어지고 판사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니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부는 독점 산업이기 때문에 사법부 자체가 없어지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판사들의 재량권을 줄이자는 요구가 많아질 것이고, 미국처럼 배심제로 가자는 움직임이 강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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