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이경묵 교수
이경묵 교수

사법부는 국민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지, 어느 정도의 폭력을 행사할지를 결정하는 최종 심판입니다. 최종 심판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심판을 봐 줘야 정의가 세워집니다. 그래야만 법원, 법원의 판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발생한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처분을 보면서 사법부가 정의로운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조권에게 돈 전달 심부름을 했던 종범 2명은 구속하고, 돈을 받은 주범인 조권을 구속하지 않았답니다. 영장실질심사에 응하지 않은 피의자 중에서 역사상 최초로 구속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장심사에 올라온 자료를 보지 못해 그 결정이 타당한 지를 필자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담당 판사께서 잘 판단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혐의를 추가한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에서는 구속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언론에 나온 것만 보면 첫 번째로 청구된 영장이 기각된 것이 정의롭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조국 전 장관 가족의 사모 펀드와 관련된 사람들의 금융계좌 추적 영장도 법원에 의해 모두 기각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모 펀드와 같은 금융 관련 범죄의 수사에서는 금융계좌 추적이 필수 중에서도 필수입니다. 이런 범죄는 금융 시장 질서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원이 금융 거래 내역 확인에 필요한 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와 유사한 범죄 혐의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 금융계좌 추적 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유일한 사례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조직 설계의 관점에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법부가 공정하지 않은 것이 검찰이 공정하지 않은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검찰이 공정하고 정의롭지 않은 것보다 사법부가 공정하고 정의롭지 않은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최종 심판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검찰에서는 봐주고 싶은 피의자를 기소하지 않거나 대충 수사하고 낮은 형량을 구형할 수 있습니다. 고소·고발당하지 않은 사람도 인지수사를 하고 기소할 수도 있고, 별건 수사를 해서 더 큰 벌을 가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폐단은 사법부가 공정하고 정의롭지 않게 판결할 때에 비해서는 약한 폐단입니다. 사법부가 최종 심판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담당하는 로마의 여신은 유스티치아(Justitia)라고 합니다. 정의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인 Justice가 여기서 나왔다고 하지요. 법을 대표하는 상징물인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천평칭이라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양날의 칼을 들고 있답니다. 저울은 죄의 크기에 꼭 맞는 벌을 내리는 것을, 칼은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의의 여신상은 보통 두 눈을 안대로 가리거나 맹인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합니다. 죄의 크기만 따질 뿐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돈이 있건 없건, 권력이 있건 없건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 동일한 처분을, 큰 죄에 대해서는 큰 벌을, 작은 죄에 대해서는 작은 벌을 내리겠다는 것이 정의의 여신상이 상징하는 것입니다. 종범은 구속하고, 영장실질심사에도 참여하지 않은 주범은 구속하지 않은 것은 정의의 여신상이 상징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시장의 효율적 작동을 방해하는 심각한 범죄 혐의에 대해 권력과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해서 영장을 발부해 주지 않는 것도 정의의 여신상이 상징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 공식화(公式化, Formalization)와 표준화(Standardization)

​동일한 판사가 동질의 범죄들에 대해 동일한 벌을 가하거나, 동질의 범죄를 심판하는 다른 판사들이 동일한 벌을 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법률입니다. 형법 등에서 어떤 범죄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벌을 가해야 한다는 것을 정해 두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한 재판을 받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조직설계에서는 이를 공식화라고 합니다. 명문화된 규정과 규칙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을 평가하고, 보상하고, 벌을 가함으로써 구성원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명문화된 규정과 규칙을 바탕으로 고객이나 납품업자 등의 이해관계자를 대우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에게 공정하게 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공식화는 임직원들과 이해관계자들을 공정하게 대하도록 유도하는 장치입니다.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고 과거에 경험하면서 학습한 것을 저장하고, 만족할만한 성과를 가져온 업무수행절차나 방식을 반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공식화를 하기도 합니다. 표준업무수행절차(SOP, Standard Operating Procedure)라고 하는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공식화의 정도는 조직마다 국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사기업에 비해 공기업에서 공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식화의 정도가 높습니다. 규모가 유사하면 공기업의 규정집이 더 두껍습니다. 기업에 비해 정부 조직에서 공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식화의 정도가 높습니다. 정부 조직은 법, 시행령, 규정 등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별로도 다릅니다. 성문법체계를 가진 대륙법계 국가가 영미법계 국가에서 보다 공식화된 법률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구성원 행동의 표준화: 작업 절차의 표준화 vs. 작업 기술의 표준화

​표준업무수행절차는 구성원들의 행동을 표준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표준업무수행절차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면 결과가 표준화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어떤 절차를 따라 일을 처리할지, 어떤 결과를 낼 것인지를 잘 예측하게 해 줍니다. 서로 다른 일을 하지만 상호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법률 중에서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같이 소송을 하는 절차를 규정한 것을 표준업무수행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행동을 표준화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표준화된 절차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기 어려울 때는 공식화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각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두 기술해 둘 수 없습니다.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마다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어떤 절차와 방식으로 가르치라는 매뉴얼을 만들어서 줄 수가 없습니다. 이럴 경우 작업 지식을 표준화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합니다. 오랜 기간의 학습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판단하에 일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교수, 판사, 검사, 의사,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법원에서는 두 가지 방법을 다 씁니다. 명문화된 법률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공식화를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가능한 경우를 다 기술하고 그에 따른 처분을 법률로 상세하게 정할 수가 없습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법률이 너무 복잡해지고 두꺼워지기 때문입니다. 법에 정한 것 이외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판사의 주관적인 판단에 맡깁니다. 각 사건의 개별적 특성에 맞게 공정한 처분을 하도록 하기 위해 사법시험을 합격하거나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에게만 판사로 일할 자격을 줍니다. 신참 판사들에게는 단독으로 판결하지 못하게 하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후에야 단독으로 판결할 수 있도록 하게 합니다. 경험이 누적되어야 중요하고 복잡한 사건을 맡깁니다. 복잡한 사건은 단독 판사가 판결하도록 하지 않고, 여러 명의 판사가 함께 합의하여 판결하도록 합니다.

​법적 처분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판사들 간의 공유 학습을 장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작업 기술의 표준화가 잘 이루어지면 판사들이 주관적 판단을 하더라도 공정성 시비 문제가 없을 수 있습니다.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판사에 따라 동일 범죄에 대해 상당히 다른 처분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조권의 사례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관련된 사모펀드 계좌 추적 영장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경우에 구속해야 하는데 도주할 우려가 있는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영장담당판사가 주관적으로 판단합니다. 아무런 가이드라인 없이 주관적으로 알아서 판단하도록 하면 동일인의 동일 범죄에 대해서 누가 영장 심사를 담당하느냐에 따라 구속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면 국민들의 법원에 대한 신뢰가 낮아집니다.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범죄 유형별로 법적 처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판사들이 공유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명문화된 법률이라는 공식화만을 통해서는 영장담당판사들의 처분을 표준화할 수 없습니다. 동일 범죄에 대해 동일한 처분을 내리는 것이 표준화인데 그것이 되지 않습니다. 표준화를 위해 내부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추가적으로 공식화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에서 모든 가능한 상황에 대해 다 정해 둘 수 없습니다. 추가적인 것은 작업 기술의 표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판사들이 재판하면서 공부하고 알게 된 것을 서로 공유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새로운 판결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요약해서 판사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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