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이경묵 교수
이경묵 교수

현 정부 출범 이후 2018. 3. 발의된 헌법 개정안은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아울러 국가와 지방정부 간 사무 배분 원칙으로 "보충성의 원칙"외에 자치입법권의 강화, 제2의 국무회의라는 '국가자치분권회의'의 신설 등을 규정하였고, 중앙과 지방의 수평적 관계를 강조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 대신 '지방정부', '지방행정부'란 용어를 쓰도록 하였다. 지방자치제도는 민주주의와 행정의 분권화를 실현하는 중요한 국가조직 원리로서 그 핵심에 ‘보충성의 원칙Susdiaritätsprinzip’이 자리하고 있다. '보충성의 원칙'이란 주민자치가 시행되는 지자체의 권리를 최우선시하며,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지자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과제만을 보충적으로 처리한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강력한 지방분권 공화국을 국정 목표로 삼고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라거나 "국가 기능의 과감한 지방 이양에 나서겠다"고 했다는데, 이것은 다분히 위헌적이다. 현 정부가 개헌 의지를 밝힌 것은 별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개헌도 하기 전에 지방분권 공화국을 국정 목표로 삼고 중앙정부 기능을 대폭 지방에 이양하겠다는 건 현행 헌법상 중앙집권 국가인 우리나라의 국가 형태를 변경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18.3.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개헌특위 개헌 토론회/사진=연합뉴스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9/2018020902231.html
2018.3.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개헌특위 개헌 토론회/사진=연합뉴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9/2018020902231.html

우리 헌법 제1조는 우리나라가 민주 공화국임과 주권재민의 원칙을 담고 있어 국가 형태에 관한 매우 중요한 조항이다. 그런데 상기 헌법 개정안은 여기에 제3항을 추가하여 지방분권국가 근거 규정을 신설하였는데, 이것은 국가 형태 변경에 관한 것으로 제헌헌법 이래 제1조 국체에 관한 내용을 변경하는 것은 그간의 9차에 걸친 헌법 개정 역사를 통하여 처음 있는 일이다. 과연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 현실에 비추어 타당한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유사이래 중앙집권 국가였던 우리나라가 지방정부에 권한을 대폭 이양하여 지방분권형 국가로 가는 것이 우리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우리가 지난 30년간 지방자치제를 도입하여 자치단체장과 의회를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고 지방자치를 시행해 왔지만 이 제도의 공과를 돌이켜 보건대, 민주성의 강화와 같은 정치적 의미는 없지 않겠지만 전체 국익이나 경제, 사회 발전 측면에서 예전보다 더 큰 효율성을 발휘했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오히려 본격적인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전이었던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기가 지방자치가 실시된 최근 30년간 보다 훨씬 더 큰 발전 양상을 보였다. 이것은 지역 사무를 자치단체에게 맡겨 민주성과 능률성을 제고하여 궁극적으로 중앙과 지방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한다는 지방자치제의 도입 목적이 효과적으로 달성되었는지에 대하여 유감스럽게도 부정적 선입견을 제공한다. 그런 관점에서 지방자치 보다 더 원심적 권력을 지향하는 지방분권국가 같은 권력 분산형 국가 체제가 과연 우리에게 바람직할 것인지는 재고가 필요해 보인다.

​사실 지방자치제에서 지방분권제로 간다 하여도 이것은 연방국가 처럼 주(지방)에 입법 권한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자치입법권을 강화한다는 것도 결국 법률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레토릭에 불과할 뿐이다.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하던 것을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인데, 이로 인한 지자체의 입법권한 확대 폭은 크지 않다. 아울러 지방 재정의 자립이라든가 하는 문제는 지금의 자치제에서도 제도 개선을 통하여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 제2의 국무회의라는 '국가자치분권회의'라는 것도 긴요치 않은 조직만 늘리는 것이다. 사실 지금 국무회의도 국무위원간 진지한 논의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형식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면 이런 회의체는 대통령의 지방 수령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시켜, 본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의 조직 문화를 볼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국제적인 사례로 독일, 일본, 영국의 예를 보자. 우선 독일은 수천 년간 연방국가였다. 물론 지금도 연방국가의 형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실제를 들여다보면 사실상의 중앙집권제 국가처럼 나라를 운영하고 있다. 이것을 "구심적 연방제 또는 단일주의Unitarismus"라 하는데, 보충성의 원칙에도 불구, 실제 주민들의 생활을 규율하는 많은 것들이 연방 입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6개의 주와 연방을 합치면 17개의 나라가 있는 셈이지만 실제 운영은 한 나라처럼 단일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고속도로를 달리면 1~2시간 만에도 몇 개 주를 지날 수 있는데 제한속도 같은 교통 법규를 주마다 달리한다면 주민들의 생활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국토가 방대한 나라는 각 주가 독립 국가나 마찬가지다. 이것을 "원심적 연방제 또는 분절주의Partikularismus"라 한다. 내가 만난 헬무트‑슈미트 대학(함부르크 연방군사대학) 정치학과의 로타Roland Lhotta 교수의 설명이다.

​"독일의 연방주의는 역사적으로 성장해왔고 독보적이기도 하다. 독일은 16개 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주마다 상당한 고유 권한을 갖고 있는 미국이나 캐나다와는 달리 더 이상 고유 업무나 권한이 많지 않다. 독일연방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기능적 권한 분할’인데 그것은 대다수의 경우 연방에 입법 권한이 주어져 있고 그 시행은 주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사실상 독일은 단일성의 이익에 더 큰 관심을 둔다. 각 주의 균등하고도 단일적인 생활방식에 목표를 맞추고 있는 독일연방 시스템은 전혀 원심적이지 않다. 그것이 독일 연방주의의 특별한 점이다."[2017.3.15]

​일본은 어떤가? 19세기 중반 페리 제독의 흑선에 의해 강제로 개국 당한 일본이 구국의 결단으로 택한 것은 존왕양이를 부르짖었던 메이지 유신이었고 그 핵심적 내용은 다름아닌 에도막부의 지방분권적 막부 체제를 타파하고 천황을 복위시켜 명실 상부한 중앙집권 국가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그렇게 해서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켰고 불과 수십 년 만에 서양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일본만 해도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남북 연장이 수천 km에 이르고, 지역 간 편차도 매우 큰 나라다. 그럼에도 중앙집권 체제를 통하여 국가를 지키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영국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라는 민족적, 언어적, 문화적으로 연방국가 보다 더 상이한 배경을 갖는 '부분 국가Teilstaaten'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오히려 연방국가보다 더욱 통일적이고 단일적인 국가로 통치되고 있다. 스코틀랜드 정부 수반은 총리가 아닌 수석장관으로 불린다. 이것은 다양성 보다는 통일성에 보다 큰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연방주의 원리도 "다양함 속의 통일Einigkeit in Vielfaeltigkeiten"이란 말에 잘 나타나 있는데, 결국 다양함 보다는 통일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연방국가임에도 중앙집권 국가처럼 단일적 국가 운영을 하는 독일이나, 지방분권적 막부 체제에서 중앙집권 국가로 전환한 일본의 국가 성공 사례를 고려해 볼 때, 전통적으로 중앙집권 국가를 해 온 우리나라가 새삼스럽게 지방분권국가의 길을 가려 한다는 것은 좀체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현대 국가의 '국가 성공' 여부는 시민간, 지역간, 계층간 보다 큰 '적합성compatibility'을 확보하는데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지금 우리나라는 지역이나 계층 간 대립 구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데, 여기에 지방분권 도입은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다. 해방 후 우리나라가 경제개발에 성공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예를 들면 필리핀 같은 나라와는 달리 지역간 편차가 크지 않고 지방의 토호 세력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토지개혁이나 경제개발계획을 중앙정부에서 밀어 부칠 수 있었고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정치의 과제는 외형보다는 내실에 있다고 보인다. 외형적 제도보다는 정당 정치나 정치 문화와 같은 연성적 요소에 초점을 맞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해방 후 대한민국은 "민주 시민 없는 민주 국가"로 출범하였다. 지금도 민주 국가이지만 민주 정당은 없다. 지방자치든 지방분권이든 그 기반은 풀뿌리 민주주의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당은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반을 두는 국민정당이라기보다는 권력자나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정당이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그 정당의 이름도 바뀌지 않았나. 우리 국회나 지방 의회가 이렇게 이합집산하고 조변석개하는 정당들에 기반을 두고 있음은 심히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지방자치제를 시행한 지 30십 년이 되었지만 지금처럼 중앙정당에서 지방 선거의 후보자들까지 사실상 공천하는 관행이 남아 있는 한 지방 자치제의 진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듯 우리의 정치 현실은 독일처럼 기초자치단체, 지방 풀뿌리 정당을 기반으로 한 아래로부터의 보충성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권력을 중심으로 한 역발상의 보충성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이런 정치 환경과 문화를 갖고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것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유사이래 수천 년 동안 중앙집권제 국가였으며, 대한민국은 중앙집권제 국가로 세계 경제사를 다시 쓰는 발전을 성취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30년을 해 온 지방자치도 부실한 마당에 지방분권을 한다면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더욱이 지방분권제는 지금의 지방자치제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제도가 특히 지방의 주민들에게 상당한 유혹과 미망을 줄 수 있는 포퓰리스트적 정책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크지 않은 나라에서 지방분권화가 필요 이상의 법적, 제도적 다원화를 가져오는 부작용은 없어야 한다. 지방 자치제의 내실화가 우선 필요해 보인다.

​[참조 :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 2017.9. 한울엠플러스(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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