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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특강 28 (단락의 형식과 내용의 일치:연습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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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특강 28 (단락의 형식과 내용의 일치:연습문제)
  • 글쓰기신문
  • 승인 2019.11.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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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습 문 제>

1. 다음 글은 단락의 개념과 그 구분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자세히 읽어 보며 생각해 보자.

<예제 1>

구두 상점의 뒷방에서 3,4명의 옛 친구들이 식료품 상의 새로운 지배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을 상상 해 보자.

"이 옌리 다블은 그 가게에서 일을 잘 할 것처럼 보이는군."

"그래, 진열장이 그가 들어 오기 전보다 훨씬 더 나아 보이더군."

"그가 부양해야 할 마누라와 세 아이들이 있으니 일을 잘 해야지."

"아마도 그는 괜찮지만 나는 칼 하리스를 더 좋아 했어. 칼은 더 친절하거든."

"그래, 나는 친절성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오늘 아침에 팀이 말하기를 지난 주에 400달라 이상을 올렸다고 하더군. 이것은 칼이 했던 것보다는 훨씬 낫지."

이렇게 해서 대화는 각 참여자가 그 주제에 대하여 각자 의견을 내놓을 때까지 계속된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그 사람들은 새로운 지배인의 성공에 대하여 계속 논의했다고 한다. 첫번째 발언은 화제를 내세웠으며, 이어지는 발언들은 모두 그 화제를 좀더 온전하게 쌓아 올려서 마침내 그 문제에 대하여 더 이상 말할 것이 남지 않을 때까지 이어진다.

단락은 이와 거의 같은 의미의 "논의"이다. 다만 단락은 전체를 한 사람이 논의하고, 좀더 부드럽게 이끌어가며, 또한 중심 사상과 모순되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 점이 다르다. 앞의 가게 뒷방 대화와 같이, 단락은 대개 설명되고 강조되어야 할 다소간의 일반화된 명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그 기본 명제가 시사하는 모든 의미를 드러내기 위하여 충분한 문장들을 갖추게 된다.

--정달영, "국어 작문에서의 단락 이론과 그 적용에 관한 분석 연구"

(한양대 국문과 박사학위 논문).

2. 다음 글은 <문장>(1939) 지에 발표된 채만식의 소설 '模索'이다. 이 무렵의 글에는 물론 단락의 구성 요소를 갖추지 못한 채 들여쓰기만 무원칙하게 나타나 있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로 잡아 보자.

이윽고 몸을 조꼼 움짓거려, 그 우습게 궁상스런 [포-스]를 한부분을 헤트린다.

생각에 골몰 했던 참이지만 칩기도 무던히 치웠었다.

절후로 치면 벌써 춘분이니, 봄도 거진 완구해 올 무렵이요 하지만, 진달레꽃머리 요때면 의레껀 하는 버릇으로, 기어코 요란떨이를 한바탕 차레를 잡자는 요량인지 연 사흘째나 날이 깨질뜻 말뜻 끄무릇거리면서 새침한 바람 끝이 수얼찮이 쌀쌀하다.

마침 날씨가 그러한데다가 또, 아침 군불 같은 것은 이름도 곧잘 알고 모르는 항용 학생 하숙집의 방명색이고 보니, 반짓발리 한겨울의 제철 추이 보다도 오히려 견디어 나기가 어려웠다.

--(<文章>,1939년 10월호 69쪽)

<길잡이> 작가의 기분에 따라 무원칙하게 들려쓰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단락의 구성 요소를 못갖춘 고립 문장들이므로 단락이라고 하기에는 곤란하다. 뒷받침 문장이 없는 외톨이 문장의 나열만으로 되어 있는 것들을 단락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의 이름있는 작가들의 글을 포함한 거의 모든 글이 단락의 형식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없이 글을 쓰고 있었음을 확인한다 할 것이다.

3. 다음 보기는 단락의 형식과 내용이 전혀 일치되지 않았다. 문제점을 지적해 보고 가다듬어 보자.

<예제 3>

천박한 정신풍토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새마을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공화당시절에 널리 유행했던 이 노랫말 속에는 가난에 대한 恨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초가집에 꽁보리밥도 잇기가 어렵고, 누더기옷으로 겨우 알몸을 감추고 살던 시절에 "잘살아보세"운동이 일어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오늘, 우리는 자가용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국민 대부분이 好衣-好食하는 부자의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바르게 사는 부자나라가 아니라, 가장 불쾌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부자나라가 되었다는 점이다.

무엇이 그토록 불쾌하냐는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국민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피부로 느끼는 불안-무질서 그리고 각종 공해를-의미한다.

세상이 이토록 불쾌하게 돌아가는 이유는 한마디로 "잘살아보세"의 표준을 기계문명의

이용과 물질적 풍요에만 두어온 천박한 정신풍토에 있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주변에는 정말로 가난한 사람이 적지않고, 그런 점에서 잘살기운동이 유효하다고 할지도 모 른다. 그러나 요즈음과 같이 병주고 약주는 잘살기 철학이 그대로 지속된다면, 이 사회는 엄청난 위기에 부딪히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특히 심각하게 따지고 넘어가야할 것은, 새로운 기계문명의 매력을 따라가면서 살아가는 "잘살아 보세" 풍조가 사실은 알게모르게 우리자신을 日本化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엊그제 일본은 이른바 평화유지활동법안을 통과시키고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병을 결정하였다. 장차 자위대의 파병대상지역 가운데에는 한반도가 포함되어 있다. "日本書紀"에서부터 일본인은 한반도를 수복되어야 할 고토로 설정해 놓고 두 차례의 침략을 자행한바 있음은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이거니와, 역시 일본은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나라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위험한 이웃두고…

그런데 이와 같이 위험한 나라를 옆에 두고도 그 나라의 자본과 기술과 문화의 도움을 받아 선진국으로 도약하여 더 잘 살아보겠다는 우리의 안이한 발상에 크나큰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돌이켜 보면, 우리가 역사적으로 일본의 도움을 받고 살아온 민족인가. 반만년의 기나긴 민족사를 통틀어 보면, 일본의 과학과 기술과 학문등 모든 것이 우리가 전해준 것에서 자라왔다. 왜 그역사의 엄청난 잠재력을 되살려서 우리 힘으로 우리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일본기술에 매달리는지 알수 없다.

언 발에 더운 물을 부으면 일시적으로는 따뜻하지만, 마침내는 동상에 걸리는 법이다.

금세기초에 우리가 망국의비운을 맞이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일본에 의지해서 잘 살아보겠다는 우리 선인들의 단견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고양이보고 생선 가게를 지키게 한 것과 우리의 근대화정책은 본질적으로 다른 게 없다.

우리는 이제 21세기의 선진 사회 진입을 위한 국가 전략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수천년간 대륙국가의 일원으로 살아온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야한다. 남북관계도 미국이나 일본의 시각에서만 다루어져서도 곤란하다. 미국이 PKO법안을 부추긴것은 저 1904년의 태프트-카쓰라 협약을 연상시켜서 여간 착잡한 것이 아니다.

국제관계 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철학을 혁신하는것은 더욱 긴급하고 중요하다. 우리 민족은 원래 "잘살아 보세"를 추구하면서 살아온것이 아니라, 무엇이 사람답게 사는 바른길인가를 고민하면서 살아왔다.

精神문화가 곧 國力

그래서 우리는 위대한 선비문화, 예의문화, 군자의 나라를 가꾸어온 것이고, 나라가 위급할 때에는 바르게 살기를 함께 지향하던 중국의 도움을 받기도했던 것이다. 나라가 위급할 때 구국투쟁에 가장 적극적이 었던것은 잘살기주의자가 아니라 바르게 살기주의자였다는것도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국력은 경제와 군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것이 아니다. 수준높은정신문화 야말로 계산할수 없는 무한한 국력임을 알때가 되었다.

--한영우, "日本에 의지한 '잘살기'," <조선일보>

<길잡이> 위 글은 다음과 같이 가다듬어서 형식과 내용이 일치된 단락을 이루어 보면 좀더 짜임새있는 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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