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장시정 독일모델연구소 대표
한일간 시민사회와 언론인 심포지움 참관 소감

심포지엄 전체 모습
심포지엄 전체 모습

어제 홋카이도 대학에서 한국과 일본 간 시민사회와 언론인 심포지엄이 9월 25일에 열렸다. 내가 소속해 있는 홋카이도 대학 공공정책대학원과 한일미래포럼이 공동으로 주관한 행사였다. 홋카이도 대학에 온 지 열흘 만에, 나로서는 작금의 한일 관계에 대한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프로그램상 시민사회 세션과 언론인 세션이 있었는데, 시민사회 세션의 주제는 "미래로 연결되는 다이얼로그"로서 성균관 대학의 한혜인 교수가 "역사문제, 갈등과 협력의 변증" 제하 주제 발표를 한 후 4명의 패널리스트가 개별 주제로 발표하였다. 언론인 세션의 주제는 "상호 이해와 갈등 극복의 모색"으로서 오노 슌 세이센여자대학 교수가 "한일 시민사회와 미디어 문화" 제하 주제 발표 후 6명의 한일 언론인들이 나와서 개별적으로 코멘트하였다. 엔도 켄遠藤 乾 홋카이도 대학 공공정책대학원장과 추규호 한일미래포럼 대표의 개회사와 종합 강평 그리고 김재신 대사의 기조 연설도 있었다. 공공정책대학원의 지 나오미池 直美 교수가 시종일관 재치 있는 사회로 회의를 이끌어 나갔다.

​연사간 토론보다는 각각의 연사가 일정 주제로 개인의 체험이나 의견을 발표하는 형식이었지만 상당한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진지함과 열기도 느껴졌다. 특히 엔도 원장이 개회사와 말미 총평에서 코멘트한 내용이 유의미하게 다가왔기에 먼저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선 그는 현재의 한일 관계에 관하여 정부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국민 차원에서도 등을 돌린 전후 최악의 관계이며 미국의 중재도 기대할 수 없고 앞으로 더 악화될 가능성마저 있다고 평가하였는데, 이런 평가는 기조 연설에서 최근 6~7년간이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말 한 김재신 대사의 평가와 일치한다. 그리고 이런 최악의 관계를 일거에 해소할 수는 없겠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무엇이 불만인지를 표현하는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 대화는 서로 솔직하되 존경respect을 담는 것이어야 하고, 혐오hate- speech 나 "일본(한국) 사람은 원래 그래" 라든가 "그 사람은 친일파(친한파)야, 토착 왜구야"와 같은 '본질주의'적 표현은 삼가야 한다고 했다. 이런 몇 가지 원칙만 지킬 수 있다면 위안부든 독도든 무엇이든 의견과 불만을 표현하는 솔직 담백한 대화가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그리고 (이런 행사에) 항상 등장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늘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남녀 간, 세대간등 균형 잡힌 연사 선정부터 고려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은 싫다는 말이다.

​그는 회의 말미 총평에서도 의미 있는 코멘트를 하였다. 그는 우선 한일 관계가 출발부터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었음을 겸허히 인정해야 하며, 그럼에도 그러한 불완전함을 지속적으로 축적해 나가면서 진화해 나가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제가 출발한 이후에도, 예를 들면 2010년 한일합방 100주년 계기 시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에서 "한국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식민지 지배가 이루어졌다"라는 점을 밝혀 한 걸음 더 나아갔고, 2015년 위안부 합의로 벽에 부딪혔던 위안부 문제가 불완전하나마 첫걸음을 시작했는데 한국이 2018. 11월 위안부 재단을 해체하고 기금을 반환하겠다는 식으로 대응한 것은 결국 "득보다는 실"이라 했다.

그러니 이제 징용공 문제에서도 한국이 제의한 1+1 과 같은 해법에 일본이 도저히 동의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며, 1+1(+α) 해법이란 것이 결국 한국과 일본 기업이 돈을 내어 기금을 만드는 것인데 위안부 합의 시 만든 기금을 파투 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떻게 그런 제안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엔도 켄은 유럽 전문가이지만 어제 한일 세미나 시 그의 코멘트는 웬만한 한일 관계 전문가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의 한일 관계 지론은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우리 속담을 연상케 하는데,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방정책을 시행할 때 적용했던 "작은 발걸음 정책Politik der kleinen Schritte"과 비교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사회 세션에서 주제 발표를 한 한혜인 교수는 청구권 협정, 위안부와 징용공 문제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재를 위요한 한일간의 갈등에 대하여 설명했다.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나 징용공문제등 반인도적 불법행위가 해결되지 않아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있다고 했고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코자 했던 산업 유산 가운데 요시다 쇼인의 유산이 들어있다고 했다. 한 교수의 주장은 '역지사지'와 '구동존이'의 자세를 추구하자는 평범하지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 김재신 대사의 기조 연설과 함께 한국 시민사회가 아니라 정부나 대법원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엔도 원장의 비판을 불렀다.

​나는 독일에서 2015년 일본이 군함도 등 산업 유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시도할 때 나치 독일의 유사 사례를 조사하러 고슬라 인근의 람멜스베르크Rammelsberg 광산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 문제는 유네스코 총회에서도 한일간 격렬한 대립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등재를 허용하되 조선인 징용자들의 강제노동 실상에 대하여 안내판을 유적지 현장에 비치하는 것으로 타협된 걸로 알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지만, 계략에도 능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 이런 안내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는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

​시민사회 세션에서 발표한 혼간지本願寺 의 '이치죠지一乘寺' 라는 사찰 주지인 도노히라 요시히꼬 스님은 홋카이도로 왔던 조선인 징용공들의 희생자 유골을 발굴하여 송환하는 일을 하여왔다. 1997년에는 슈마리나이 지역에서 한국 대학생들과 공동으로 유해 발굴 작업을 했고 아사지노 비행장에서도 같은 일을 했다. 홋카이도 도청의 자료에 따르면 1939년~1945년간 약 14만 5천 명의 징용공들이 홋카이도로 왔고, 도로, 철도, 항만, 비행장, 댐 건설 현장이나 탄광에서 많은 희생자가 나왔으나 한국으로의 귀환 여부등 그 상세한 사정은 파악되지 않았다 한다.

배포된 "70년 만의 귀향"이란 자료를 보니 72구의 한국인 징용자 유골이 2015년에 한국으로 봉환되었다는데, 1942년부터 1945년 종전 시까지 대부분 20대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것도 아닌데 이렇듯 희생자가 많았다니 결국 당시 노동조건이 가혹했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도노히라 주지 스님은 1980년대 초부터 홋카이도 공사장 등지에서 유해 발굴을 하여 일본과 한국의 유족들에게 전달해 왔다는데, 일본인 유족들은 고맙다면서 유해를 인수했지만, 한국인 유족들은 보상을 해라는 등의 항의가 거세어 대화도 제대로 못 나누고 돌아와야만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조선인 징용 희생자 가족들의 분노가 40여 년 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실상을 비판했다.

양대륭 조총련계 재일교포 3세 분은 2차대전 시 미 공군의 공습으로 숨진 간토 지역의 조선인 1만여 명의 유골을 수습하고 추모제를 지내는 일을 해왔다고 했다. 도쿄가 있는 간토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라 강제 연행자는 거의 없었다 한다. 이 두 분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모든 게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도노히라 주지 스님은 조선인 징용공들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노력으로 그 유해를 발굴하고 한국의 유족들에게 전달까지 한 선행을 베푼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보상을 거론하며 거세게 항의해서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돌아가게까지 했다니 그 분노의 깊이를 짐작할만하다.

주제 발표하는 오노 슌 교수
주제 발표하는 오노 슌 교수

언론인 세션에서는 세이센여자대학의 지구시민학과 교수인 마이니치 신문의 언론인 출신 오노 슌大野 俊 교수가 한일 시민의 상호 인식과 여론조사 동향에 대하여 발표하였다. 이 대학 학생들은 2014년과 2016년 여름, 서울과 부산 시내에서 한일 시민 우호를 위한 프리 허그 필드워크를 시행하였는데, 이 유튜브 동영상이 30만 뷰를 넘었다. 2018년 조사에서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하여 남성보다는 여성이, 그리고 18~ 29세 젊은 층은 약 60%가 호감을 갖는 등 젊을수록 더 호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2019. 7월 한국갤럽에서 일본이라는 국가와 일본 사람을 구분해서 여론 조사를 한 결과, '일본'에 호감 12%, 비호감 77%로 나타났고 '일본 사람'에 대해서는 호감 42%, 비호감 43%로 나타났다. 오노 교수는 상대방의 '나라'에 대한 인상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비판의 여지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설문을 바꾸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사실을 규명하기 어렵다 하면서 2019. 1월 리얼미터가 조사한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 설문 조사 사례도 함께 거론했다.

이 조사에서 문정부가 "일본에 더욱 강경하게 해야 한다"라는 입장이 46%가 나왔는데, 이 조사의 응답률이 6.7%에 불과한 점을 고려한다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결론은 언론에서 각종 여론 조사를 더욱 비판적 관점에서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리얼미터의 여론 조사 신빙성에 대하여는 최근 우리 언론에서도 문제 된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호감도 조사 결과가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정도와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프리허그 켐페인 중인 일본 세이센 여대생
한국에서 프리허그 켐페인 중인 일본 세이센 여대생

오노 교수는 3년마다 한국에 가서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에게 물어본다는데 최근에는 보상보다는 사죄를 더 많이 거론하고 있고, 인도에 조각물 설치는 어느 나라나 허용치 않는다는 견해를 부산 시민에게서 듣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결론적으로 세대나 성별에 따라 한일 양국민간 인식이나 호감도가 많이 다르며 반일이나 친일과 같은 주관적 판단을 유도하는 용어 사용이나 민족주의적 표현을 언론에서부터 자제하고, 여론 조사의 함정에 유의하되, 언론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에 치중해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며 세계시민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발표를 마쳤다.

언론인 세션의 한,일 언론인들
언론인 세션의 한,일 언론인들

오노 슌 교수의 발표 후 도쿄 특파원을 지낸 한국 언론인과 서울 특파원을 지낸 일본 언론인들이 각 3명씩 발표하였는데, 한국에서는 동아, 한겨레, 세계일보에서, 일본에서는 마이니치, 도쿄, 홋카이도신문에서 나왔다. 특기할 만한 것은 우선 세계일보 김청중 특파원의 언론의 자율성에 관한 비판으로, 일본 정부가 대한 수출규제와 관련하여 그 이유로서 처음에는 대법원 징용 판결을 문제 삼다가 그 후 아무런 이유도 설명치 않고 수출관리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입장을 변경하였는데 대다수의 일본 언론이 이것을 따지지 않고 그대로 보도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중국은 매체에 정치면이 아예 없고 당국에서 발표한 것을 한자도 고칠 수 없다고 했다.

​홋카이도신문의 마쓰모토 소이치松本 創一 기자는 작년에 홋카이도에서 지진이 났을 때 일본의 현지 대피소로 피난 온 외국인들은 거의 한국 관광객들 밖에 없었다면서 이것은 한국과 일본의 공통적인 사회 시스템에 기인한 것으로 한국인들의 인식에는 현지 대피소로 가면 일본인들이 도와줄 거라는 신뢰가 있었을 것이라 했다. 예를 들자면 그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어디에서 피신했는지 잘 모를 정도로 현지 대피소에서는 볼 수 없었는데 이것은 사회 시스템이 달라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그는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 여행 안 가기 같은 것도 이미 한국인들의 생활에 일본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며 이런 공통 기반을 갖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 정치나 역사문제에 있어서도 얼마든지 대화와 논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긍정적인 견해를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양극화 현상이나 프레임적 사고가 언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으로 마이니치 신문의 오누키 토모코 논설위원과 서영아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주장이다. 일본에서도 보수, 진보 언론 간 간극이 커서 예를 들자면 이번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에 대하여도 산케이나 요미우리 신문은 정부 발표를 그대로 실어 대한 수출 '금지'로 보도했지만 마이니치 신문은 대한 수출 '규제'로 바꾸어 게재하였다.

문재인 정권에 대하여도 요미우리신문은 처음부터 반일, 반미, 친북정권으로 썼지만 마이니치신문은 리버럴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고 했다. 아베 총리의 관저 앞에서 수백 명이 시위해서 레임덕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 같은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읽고 싶은 것만 읽으려는 위험성이 엿보이는 기사라고 비판하였다. 이런 것은 확증 편향을 강화하고 프레임 정치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실세가 SNS로 "징용공 판결을 부정하면 친일파"라거나 "애국이냐 이적이냐?"라는 식의 이분법 사고를 강조해서 충격을 몰고 왔다고도 했다.

​제래드 다이아몬드Jered Diamond는 최근 자신의 저서 '대변동Upheaval'에서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정치의 양극화 현상에 따른 타협의 부재를 꼽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적 틈새'에 파묻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이아몬드의 관찰이나 상기 언론인들이 실제 현장에서 느끼고 있는 것이나 일맥상통함을 볼 수 있다.

​지금은 한일간에 정부 간 대화와 협력도 막혀있고 양 국민들 간 우호적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지만, 역사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추규호 회장) 서로 존경심을 갖고 혐오와 본질주의를 제쳐둔 채(엔도 켄 원장), 단순히 미래 지향적임을 넘어서서 미래로 연결되어 나가는(지 나오미 교수) 허심탄회하고도 생산적인 대화를 꾸준히 집적시켜 나간다면, 그리고 역지사지와 구동존이의 자세로 임한다면(김재신 대사) 한일 양국이 계속 먼 나라로 남겨지란 법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한일 관계에 관한 대단히 역동적이고 다양한 의견을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매우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회의였다. 다만, 한 가지 연사나 패널리스트들이 대부분 좌파 또는 진보 성향의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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