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장시정 독일모델연구소 대표

  

지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사회 현상의 특징이라면 종교의 과열화와 함께 ‘네트워킹’에의 몰두 현상을 들 수 있겠다. 한국 사회의 네트워킹은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전 사회적 인맥 엮기다. 이것은 공식적, 공개적, 제도적이라기보다는 비공식적, 비공개적, 특정 개인 또는 그룹의 사유적 행태를 보인다. 그런 연유로 사회 공익적 관점에서 볼 때 긍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다. 지역 향우회나 학교 동창회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대형 추문이 터질 때마다 그 배후에 숨어 있는 비정상적인 ‘네트워킹’과 반사회적인 '고객정치'의 검은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지금 한 달 가까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어느 법무장관 후보자와 그 가족의 행태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네트워킹의 부정적 단면들을 다시 목도하게 되었다. 놀라울 정도로 아침마다 새롭게 드러나고 있는 스캔달에는 어김없이 친족과 동향, 동창 등 은밀한 네트워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서울대, 부산대, 단국대 등 여러 대학에서 이 후보자 자녀의 스펙을 쌓거나 장학금을 주기 위해 지연이나 학연 등으로 엮어진 은밀한 네트워킹이 대학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다수 학생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나섰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사람들은 최고의 지성이라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학문의 권유 [ 주)신원문화사 ]
학문의 권유 [ 주)신원문화사 ]
자조론 [ 비즈니스북스 ]
자조론 [ 비즈니스북스 ]

이번 일을 보면서 우선 가족이나 자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지적하고 싶다. 바로 여기서 온갖 무리가 시작하고 있는데, 자식 사랑이야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서양이라면 범법과 탈법을 자행해 가면서까지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만 이렇게 유별난 자식 사랑을 할까?

이와 관련해 우리 사회에 뿌리박고 있는 유교 문화를 지목하고 싶다. 삼강오륜이라는 것만 봐도 개인의 윤리보다는 집단 윤리를 가르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군신 간, 부자 간, 부부 간, 그리고 친구 간의 행동 규범을 제시하고 있지만, 우리가 각 개인으로서 가져야 할 인격의 고결함이나 정직, 자조 같은 정신적 덕목은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 친족, 동향같은 게마인샤프트적 집단 윤리가 각 개인의 합리적 이성을 마비시키고도 남음이 있겠다.

유교 문화로 엮어진 조선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개인적 이성을 강조한 일본을 이기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메이지 시대 당시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국민 게몽서였던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의 권유"나 새뮤얼 스마일즈가 쓴 "자조론" 같은 개인의 이성을 강조한 책들이 백만 부씩 팔려나갔다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게마인샤프트적 집단 간의 유대가 끈끈한 것은 물론이지만 학교라는 게젤샤프트의 네트워킹으로 맺어진 동창 같은 ‘내집단in-group‘에서도 남다른 유대감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이번 장관 후보자의 사건에서 매우 다양한 유형의 ’내집단‘이 여기 저기 형성되면서 ’외집단out-group’을 배척하고 있음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이 후보자를 옹호하는 정당이나 특정 사회세력 같은 공식적이거나 규모가 큰 '내집단'이 공공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강남 같은 부자 동네에서 유럽의 특정 페스티벌 여행에 참가비가 터무니없이 비싸도 예약이 밀린다 한다. 부자들만의 네트워킹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원래 목적의 사친회를 넘어서서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자식들의 스펙을 쌓아주기 위해 품앗이 성격의 네트워킹을 한다. 대학에서 주관하는 무슨 무슨 ‘최고과정’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학습기회의 창출이라는 본질적 목적보다는 명사들의 네트워킹이라는 부수적 목적 때문에 비싼 참가비를 감수하는 것이고, 대학은 이를 이용해서 돈을 벌고 있다. 그래서 반년이나 1년을 그 ‘최고과정’이라는 것을 다니고 나면 동기회를 조직해서 그들만의 ‘내집단’을 지속하려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최근 이런 ‘과정’은 대학뿐만 아니라 언론사에서도 개설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언론사가 지식산업으로 장사를 하지만, 양태가 다르다. 그들은 누가 오든 참가비를 받고 한 번의 강연 또는 하루나 이틀 정도의 강연회를 주관한다. 강연장에 들어갈 때 명찰을 주는 정도지 참가자들 간에 집단적인 네트워킹한다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심지어 아파트값을 담합하기 위해 동네 부녀회가 동원되기도 한다 하니 가히 네트워킹과 ‘내집단’의 종결자를 보는 듯하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지만, 우리 사회의 이 네트워킹 열풍은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가 투명하지 않고 법과 규칙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사적인 네트워킹으로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지만, 예를 들어 독일 사람들에게는 옷깃을 스치는 정도의 인연은 개의치 않는다. 그런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늘 일어나는 일들은 인연이 아니며, 그러니 신경 쓰지 않는다. 왜 우리에게만 그런 조그만 인연들이 소중할까.

​그리스 재정위기가 터지자 독일에서는 그리스 사회의 비효율성에 대한 엄청난 성토가 쏟아졌다. 개인 집을 짓는 데 건축허가라도 받을라치면 해당 관청 담당 직원과 점심이라도 해야지 그냥 서류만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리스에 비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확실한 것은 개인적인 네트워킹에 의존하는 정도가 독일 사회보다는 우리가 훨씬 크다는 점이다. 우리는 온갖 일에 개인적으로 신경을 쓰고 관리해야 한다. 매우 피곤한 일이고 사회적 비용도 많다. 우리 사회가 좀 더 투명하고 공적인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였으면 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꼭 사회적인 불합리성으로부터만 오는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면 우리 주위에 소위 ‘유명인’, ‘셀러브리티’가 있는 경우 많은 사람은 그냥 두고 보지를 못한다. 그럴 만한 상황이나 계제가 아닌데도 접근해서 말을 걸거나 악수라도 하려 하고 악수가 허용되면 사진도 찍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네트워킹과 같은 사회적 현상과 연관성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적 이기심이나 허영심 때문이다. 유명인과 동일시되는 느낌 또는 그 사진을 갖고 허세를 부리려는 심리가 문제다. 이런 허영심도 부조리한 '경조사 문화'에서 볼 수 있는 허영심과 일맥상통하는데, 필경 유교문화의 악영향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틴 아만푸어 [ i2.cdn.turner.com ]
크리스틴 아만푸어 [ i2.cdn.turner.com ]

이런 생각은 의외로 만연해 있다. CNN의 이란 출신 유명 기자 아만푸어Christiane Amanpour는 1990년대부터 이름을 떨친 중동 특파원이었다. 그녀가 발칸전쟁 직후 사라예보 시내의 한 호텔 식당에서 바로 내 옆 테이블에서 식사했고, 헨리 키신저와도 함부르크의 한 호텔 식당에서 그런 식으로 만났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당연하다. 그 유명인의 사적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것도 좋지만 ‘나도 유명인!’이라는 자존심이 있으니 말이다. 바라건데 이 자존심이, 알량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불합리한 네트워킹의 유혹까지 물리쳐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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